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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실

르네 마그리트전

에듀인 2007. 2. 17. 18:39

2006년 12월 20일부터 2007년 4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초현실주의[각주:1]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와 시적인 조형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제작했지만, 동시에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과는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를 창출한 작가이다.(리플릿에서 발췌)">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展(René  Magritte, Empire of Dreams)'에 오늘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연휴때에도 역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들'을 봤는데, 책이나 TV로만 보던 작품들을 직접 보게 되니 역시 남다르더군요. 그래서 올 명절에도 서울시립미술관을 다시 한번 찾게 되었습니다.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관람객들이 많았는데요, 어린 아이들부터 젊은 커플들, 나이 드신 분들까지 많은 분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마그리트의 초현실 미술에 대해서는 조금씩 어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많이 어려워했었는데,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다시 한번 작품을 감상하였더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팜플렛에 소개된 이번 전시에 대한 설명입니다.

르네 마그리트전 소개

우리시대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준 작가이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숨겨져 있는 환상을 우리에게 찾아준 작가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이자 시인인 마그리트[각주:2]꿈과 무의식, 욕망의 세계에 매료되었던 것과 달리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20세기 미술의 거장 중 한 사람이다.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는 그의 그림은 시대를 초월하고 동, 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즈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의 사과모양 로고), 영화(매트릭스 시리즈), 문학, 광고 등 대중문화와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교육적인'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그리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의 작품은 아무런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은 가시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조형세계는 인간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기성과 현실의 경직된 질서 체계를 정확하고 세밀한 이미지를 통해 회화적으로 꼬집고 뒤집는 기묘하고도 야릇한, 비평적인 예술창작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그리트는 광적인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시도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냉정한 이성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유화, 과슈[각주:3] 수용성의 아라비아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 또는 이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
‘씻다’, ‘빨다’라는 뜻으로 수용성의 아라비아고무를 교착제로 하여 반죽한 중후한 느낌의 불투명 수채물감 또는 이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회화 작품을 이르는 말이다. 과슈의 사용은 중세의 삽화장식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16∼18세기에는 작은 크기의 초상화나 세밀화의 제작에 적극 활용되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비롯한 회화 전반에서 많이 쓰인다.
물에 타서 사용하기 때문에 투명화 효과도 낼 수 있고 수채화와 병용도 가능하며, 두텁게 발라 마티에르도 낼 수 있어 현대 화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재료이다. 색조는 선명하지만 유화와 같은 광택이 없으며 가라앉은 부드러운 효과를 낸다. 마르면 젖었을 때보다 밝은 색조로 변한다. 평평하고 균일한 색면을 원할 경우에 효과적이며, 종이뿐만 아니라 각종 경질 재료에도 사용할 수 있다.
모빌과 스태빌로 유명한 미국의 조각가인 콜더는 과슈 애용자였으며, 20세기 미술가인 제니퍼 바틀레트, 신표현주의의 지그마르 폴케 등도 수채물감과 과슈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EnCyber 백과사전)">, 드로잉을 포함하는 회화 120여점과 친필 서신, 사진 등 총 270여점에 달하는 마그리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희귀 영상자료들과 함께 소개되는 이번 한국에서의 회고전은 마그리트가 그의 작품에서 집요하게 차용, 인용해온 사과, 돌, 새, 중절모, 담배 파이프, 여인의 특정 신체 부위 등과 함께 우리에게 몇몇 주요 회화작품 위주로 알려져 있는 마그리트와 그의 작품세계를 종합적,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함께 소개되는 영상작업의 경우, 그가 10대 때에 탐닉했던 에드거 앨런 포우[각주:4] 19세기 최대의 독창가로 꼽히는 미국의 시인·소설가·비평가. 단편《황금 풍뎅이》,《어셔가(家)의 몰락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1839) ,《모르그가의 살인사건》,《큰 소용돌이에 빨려들어서》,《검은 고양이》,《잃어버린 편지》등이 있다.
미국 문학만이 아니고 세계 문학사상 그 유래를 볼 수 없는 천재적 작가이며 위대한 문학이론가. 시인,소설가, 비평가를 겸하고, 시와 소설의 이론을 개척한 천재. 파란 많은 생애를 통해 독창적인 창작을 하고, 미의 창조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한 작가로서, 낭만주의 기인 또는 상징주의 시인으로써, 추리소설의 개척자로써 그 영향을 널리 세계에 펼친 역사적 작가이다.
그의 저술과 생애에서 우리는 낭만주의의 몇몇 극단적 면모를 보게 된다. 그는 시를 음악으로 간주함에 있어 그의 모든 미국 선구자들은 능가하고 있다. 그는 우울함에 있어 묘지 시인들에 견줄만하며, 또 심지어 그는 모든 시적 소재 중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이야말로 가장 시적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의 공포주의는 단순한 황폐한 성곽과 피에 굶주린 흡혈귀 그리고 처형당한 여주인공 등의 퇴적물이 아니라, 어두운 정신세계에 대한 심리적 조명이었다. 그는 초자연적인 미를 갈망하였으며, 또 멀고 외진 것을 구라파와 아라비아를 넘어 하는 끝가지 끌고 갔다. 분명히 그는 그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어떤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갈망하고 있는 고독한 낭만주의자에게 꼭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http://windshoes.new21.org/novel-poe.htm ">나 스티븐슨[각주:5]  《보물섬 Treasure Island》(1883) 을 쓴 영국 소설가 겸 시인. 소설의 근원적 속성에다 새생명을 불어넣었다. 평이하고 유창한 《물방앗간의 윌》, 격조 높은 명문의 《마카임》 등의 소품도 주옥 같은 명작으로 꼽힌다. 그 밖에 대표 작품으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등이 있다."> 원작의 판타지영화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지난 3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마련된 국내 최초의 르네 마그리트전은 브뤼셀의 벨기에 왕립미술관, 마그리트 재단은 물론, 뉴욕, 런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마그리트의 걸작과 전 세계 저명 컬렉터들의 비장품을 대거 포함하는 진정한 마그리트 컬렉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06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마이욜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마그리트의 드로잉전과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파리의 유럽 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마그리트의 사진전에 소개되었던 작품들이 대부분 출품된다.
또한 이번 전시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이 2007년 가을 왕립미술관에 개관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이례적으로 해외에 마그리트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전용 미술관 개관 이화에는 아마도 접하기 힘들지 모를 마그리트의 마지막 대규모 해외 나들이가 될 것이다.

전시는 10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서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었는데요, 각 섹션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그리트 작품의 흐름을 따라 열 개의 섹션을 돌게 되어 있었습니다. 도슨트는 이 전시공간의 디자인이 해외에서 계획된 것이라고 했는데요, 처음에는 좀 난해했지만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각 섹션별로 벽에 제시된 설명을 통해 이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벽의 색깔과 글씨의 색깔이 비슷한데, 이것도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평면적인 벽에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큰 액자같은 프레임에 액자가 다시 걸려있는데요, 이것도 작품에 집중시키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하였습니다.)

  1. 조제트와 그의 친구들
  2. 초현실주의 시기
  3. 광고와 장식미술
  4. 인상주의 시기(이상 2전시실)
  5. 바슈시기
  6. 초현실주의 화풍으로의 복귀
  7. 1930년대 회화의 복제
  8. 말년의 작업(이상 3전시실)
  9.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서의 마그리트
  10.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의 사진(이상 4전시실)

마그리트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슨트는 그의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서적들을 통해 설명을 해 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각 섹션별 도슨트의 설명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 조제트와 그의 친구들
2. 초현실주의 시기


2층 입구를 통해서 들어간 첫번째 전시공간에서는 마그리트의 아내 조제트와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은 그의 친구들이 그림 속 장면을 연출한 사진들, 그가 1925년경부터 개척한 자신만의 초현실주의 세계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1925년부터 이질적인 사물을 결합하던 마그리트는 1936년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회화를 창조하는데, 이질적 사물 대신 유사한 사물을 결합하여 낮선 충격을 던져주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선수, 1927 캔버스에 유채 152 x 195cm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위 작품은 마그리트의 작품 중 보기 드문 대작이며 가장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크리켓을 하는 두 사람과 목이 없이 날아다니는 거북이, 뒤쪽의 입이 보이지 않는 소녀를 통해 한밤중의 괴기스러운 고요함과 긴장감이 그림을 지배하고 있다. 도슨트는 이 작품 속의 커튼을 통해 마그리트의 작품 전시를 시작하겠다는 의도로 가장 먼저 설치되었다고 했다.

"강에 사는 사람들"
마그리트가 12살때 어머니가 아무 이유 없이 강에 투신자살하였고, 몇일 뒤 건져 올려진 어머니의 사체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받은 충격이 이 작품에 나타나 있다. 머리에 붙은 다리와 알 수 없는 형체들이 그때의 기억을 나타내고 있다.

자정의 결혼, 1926 캔버스에 유채 139.5 x 105.5cm

마그리트는 자신이 직접 작품의 제목을 짓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문학가 친구들이 이름을 붙여준 것이라 한다. 남자의 뒷통수와 여자의 머리 부분, 거울과 거꾸로 서있는 나무들, 모두 데페이즈망[각주:6] 어떤 물건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그 물건으로부터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여 물체끼리의 기이한 만남을 현출시키는 기법이다. 원래 ‘환경의 변화’를 뜻하는 말로서, 이 방법으로 보는 사람의 감각의 심층부에 주는 강한 충격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발견"
여성의 나체가 나무무늬와 겹쳐 보이는 이 작품 또한 이미지의 '중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는 나의 그림에 오브제의 조화로움을 발견했다"라는 마그리트의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렌느 혹은 금지된 책"
손가락과 둥근 종, 계단이 있는 이 작품은 이렌느(rirene)라는 책과 관련있다. 손가락과 둥근 종은 알파벳 i 를 상징한 것이다. 누군가 이 작품을 보고 "가장 에로틱한 그림"이라 했는데, 책의 내용을 아는 사람일 것이라는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다. 둥근 은방울은 소리, 언어의 대체물로, 완전함과 완벽함을 나타내려고 했다고 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원근법이 생략되었는데, 기존의 미술사조를 탈피하려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전통회화의 원근법 표현 방법인 '희미하게 하기'를 생략하고 사물의 크기 변화만으로 원근감을 느끼도록 해서, 약간은 어색하게도 보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나는 고대 혹은 현대 미술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 여자들의 긴머리와 무릎,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 골목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상징들은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하여 시의 신비한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언어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미지는 언어가 말하는 것을 보여줄 수 없다. 그러나 그려진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과 언어로 표현된 것은 결국 같은 것이다.

중세의 공황, 1927 캔버스에 유채 97 x 74cm


3. 광고와 장식미술

마그리트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이전에는 가구와 벽지 디자이너로 생계를 유지했고, 화가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종종 광고와 장식미술 작품을 제작했다. 이번에 전시된 광고와 장식미술은 대부분 그가 유명해진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좁은 전시장에 양쪽으로 그의 광고 디자인 작품들이 여러점 걸려 있었다.

벨기에 섬유 노동자센터를 위한 포스터, 1938 두부분으로 콜라주한종이에 크레용, 과슈, 잉크 16.2 x 15.3 cm

이 광고미술 작품들은 '석판화'로 만들어져서 붓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며, 회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당시 작품에서 많이 발견된다. 샤갈이자 피카소도 석판화로 작품을 많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마그리트는 일본풍의 광고미술도 제작하였는데, 이때 벨기에에 유명했던 것이 일본 문화였나보다.
전시실 구석에는 사각의 박스가 있었는데, 마그리트의 스케치나 드로잉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에게 있어 회화는 색채를 병렬하는 미술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색채는 실제적인 면을 상실하고 대신 영감을 받는 사유를 드러내게 한다.

초현실주의는 우리가 꿈을 꾸면서 가졌던 것과 유사한 자유를 실제의 삶에서 요구한다.

이떤 초상화는 그의 모델을 닮으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그 모델이 초상화와 닮기를 바란다.

4. 인상주의 시기

좁고 어두운 '광고와 장식미술' 섹션을 지나오면 만나게 되는 넓은 공간의 전시실에 이전과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에 대한 탐구에서 잠시 벗어나 인상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표현적인 붓 터치를 도입한 작품들을 제작한다. 이 시기의 작업은 독일이나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역설적인 저항으로 해석된다.

회귀, 1940 캔버스에 유채 50 x 65 cm

'회귀'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마그리트를 상징하는 새모양이 나타나 있다. 새모양 안쪽으로는 밝은 낮의 하늘이, 밖으로는 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당시의 상대성이론이나 시공 전환에 대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반영이 들어 있다고 한다.
도슨트는 마그리트의 세밀한 별 묘사를 칭찬하였다. 이 별들은 다른 작품에서도 보여서, 마그리트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미소

'미소'와 '수학' 같은 작품은 인상주의 화풍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히틀러에 반발하여 심적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벨기에 국민을 위해 잠시 그리게 된 작품들이 따르는 경향이다.

천일야화, 1946 캔버스에 유채 50 x 65cm

이 작품 역시 인상주의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비슷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보물섬, 1942~43 캔버스에 유채 60 x 81cm

다음 칸에서 또 색다른 마그리트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새의 모습을 한 식물의 잎들, 그것도 줄기가 없이 잎만으로 된 식물이다. 식물과 동물(새)의 조합은 '정'과 '동'의 결합과도 관련있다.
'새'를 나타낸 것은 자신과 친한 친구가 새슬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물은 새롭게 자라나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고 하였다.

불길

이 섹션을 빠져나오는 길에 어떤 꼬마가 '불길'을 보고 "어, 나뭇잎이 나무가 되었네."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처음에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직접 와닿지 않았던 초현실주의적 기법에 대한 이해를 이 꼬마는 어느 정도 하고 있는것이었다. 사물을 변형하거나 새롭게 배치하여 색다른 모습을 창조해내는 초현실주의야 말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미술수업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검은 마술, 1927 캔버스에 유채 80 x 60cm

이 작품은 마그리트의 부인 조제트를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파란색의 상체는 하늘을, 붉은색의 하체는 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조제트가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것이 아니란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그림을 지켜보던 관객들 모두 잠시 웃을 수 있었다.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5. 바슈 시기

1948년 마그리트는 야수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거친 표현성을 도입해 야수주의를 풍자하는 역설적인 작업을 선보이게 된다. 그 이름도 야수주의(Fauvism, 수소) 를 비판한다 해서 암소를 뜻하는 바슈(vache)시기라고 불렀는데, 마그리트 혼자 주장하다 주저앉았다고 한다.

심리학자, 1948 종이에 크레용, 수채물감, 과슈 40.7 x 32cm

이 시기의 작품들은 만화 기법을 가져와 당시 대표적인 프랑스 문화였던 포비즘(야수주의)를 가져오는 동시에 풍자하는 경향을 보인다. 남자의 몸은 자세히 보면 황금색이라서 마그리트가 색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6. 초현실주의 화풍으로의 복귀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시기 이후에 마그리트는 다시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복귀한다. 마그리트는 그 이유를 아내인 조제트가 이전의 화풍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붉은모델, 1953 캔버스에 유채 38 x 46 cm

영화 '반지의 제왕'에 호빗의 신발로 아이디어가 채택된 작품이라고 한다.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발 자체와 신발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바로 '이미지 중첩'이라는 초현실주의 기법이라고 한다. 신발인지 발인지 과연 이것을 신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한다.

올마이어의 성, 1951 캔버스에 유채 80 x 60cm

공중에 떠 있는 성, "천공의 성 라퓨타"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이 바로 역으로 미야자키의 영화에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대화의 기술, 1950 캔버스에 유채 65 x 81cm


7. 1930년대 회화의 복제

마그리트는 1930년대의 화풍으로 복귀하면서 그 당시에 그려진 작품들을 약간씩 변형시키거나 유화를 과슈로 다시 그리는 식으로 스스로 자신의 회화를 복제시켰다.
마그리트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새, 중절모, 은색 종, 하늘, 별, 중절모, 파이프가 반복되거나 여러 작품에 걸쳐 나타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신뢰, 1964-65 캔버스에 유채 41 x 33cm

이 전시회의 포스터로 사용된 '신뢰'에서도 역시 파이프와 중절모가 등장하는데, 중절모를 쓴 사람을 그린 것인지 파이프를 그린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작품이다. 사람에 집중을 하면 파이프가 보이고, 파이프에 집중을 하면 얼굴이 보인다. 마그리트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인간의 부품화, 획일화를 문제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팜플렛에서는 '작가 자신의 익명성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순례자, 1966 캔버스에 유채 81 x 65cm

"순례자" 역시 중절모를 쓴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데, 옷에서 벗어나서 따로 그려져 있다. 개성이 없이, 얼굴 생김새의 차이에 의해서 사람을 구분하게 되는 몰개성화를 풍조하고 있는 듯 하다. 얼굴을 바꾸면 다른 사람이 되듯이, 맞춰진 기성복에 의해 사람들은 같아진다. 요즘 유행하는 성형수술은 사람의 얼굴까지 똑같이 바꿀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골콘다

중절모를 쓴 남자들이 비오듯 떨어지는 '골콘다'에서의 반복은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스미스요원의 반복이 이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는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다. 또한 비처럼 떨어진다고 하여 중력을 이기는 과학에 대한 관심도 드러낸 것이라고 하였다.

8. 말년의 작업

마그리트는 언제나 화가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다. 말년인 1960년대의 작품에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마그리트의 철학적 회화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진실의 추구, 1963 캔버스에 유채 130 x 97cm

비교적 큰 크기의 이 작품은 벨기에 정부의 요청으로 제작된 것이라 한다. 오른쪽의 생선의 종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관객에 따라서 '참치'로 보기도 한다고 한다.
역시 은색 방울이 등장하는데, 여러 작품에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것으로서 각 작품마다 해석되는 의미가 다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둥근 모양의 방울은 조화로움을 뜻한다고 한다.

심금, 1960 캔버스에 유채 114 x 146cm

거대한 와인잔 모양에 담긴 구름과 배경이 어울리지 않는다. 저 와인잔에 술을 따르면 언제 다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상대적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 하다. 절대자와의 만남을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 큰 와인잔을 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9.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서의 마그리트

영화 애호가였던 마그리트는 1956년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그의 영화들은 집과 화실을 배경으로 아내인 조제트와 친구들의 유쾌한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무성영화들이다.

스크린에서 비춰진 마그리트의 영화가 바닥에 비춰지고 있다.

나는 영화예술의 기초를 이해하고 있지만 회화를 통해서만 나의 생각들을 표현 할 수 있다.
10.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의 사진

1956년 마그리트는 미국의 유명 사진 작가 듀안 마이클[각주:7] 원래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듀안 마이클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본격적인 사진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의 유명한 전시회는 66년에는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가 개최한&nbsp; <사회적 풍경을 향해서>를 통해서 알려졌다. 이 전시회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친 현대사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 전시회를 통해서 듀안 마이클은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마이클의 표현방식이 매우 특이했으며 그의 사진속에 내재된 소제나 주제면에서 추상적인 것을 추구했다는 데에 관람자로 하여금 깊은 인상으로 주었기 때문이다.
http://www.photoman.co.kr/photo/photographer/DuaneMichals.html
http://windshoes.new21.org/photo-michals.htm ">에게 그의 일상과 작업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개방한다. 마이클의 사진은 실재와 상상 세계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단순한 기록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중인화의 기법으로 마그리트의 그림속 이미지 중첩, 부재, 잡종화를 사진으로 재탄생시켰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


듀안 마이클의 사진


정리하는 것이 관람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하지만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가의 작품들을 한번 더 되새김질한다는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소도록을 구입한 곳


관련 자료
http://www.campustimes.co.kr/Service2/ShellView.asp?TreeID=1821&PCode=0002&DataID=200702091104000068
http://www.renemagritte.co.kr/4_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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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택트  (0) 200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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